미국에서 직구하는 수고가 있다고 하더라도 성능 차이가 없는 가운데, 용팔이들의 기운이 ssd 가격에 남아있는 와중에는
wd blue 고용량을 구입하는 것이 백배 이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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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unting naglalapit
Ang ating mga mundo
Pag-asa ay ating bitbit
Maligaya't walang takot
Ang saya at pagsinta'y
Tila walang kapantay
Inaabangan ang bawat pagtagpo
Walang mintis ang tuwa
Sating dalawa
Hinamak ang lahat
Unti unting nawawala
Ang iyong mga salita
Dahan dahang naglalaho
Ang lahat ng pangako
Napapansing lumalayo
Ang 'iyong tingin
Di na alam ang dapat kong gawin
Tuluyan ka na bang mawawala sa 'kin
Ang tamis at aruga
Na laganap sa simula
Ngayo'y nabaon na
Sa puso't isip na mapait
'Di na maibabalik
Sa unang araw.
Ang pait at ang sakit
Na dati'y wala naman
Ngayon ay hindi na mailagan
Ang tanong na walang sagot
Luha ang nadudulot
Sa ating mga mata
Hahanap-hanapin
Ang mga bulong sa gabi
Ulit-ulitin
Ang bawat kwento at sikreto natin
Hanggang wala na
Ang luha sa puso ko
Hanggang sa muli
Tayo rin magtatagpo
필리핀 밴드 Up Dharma Down의 타갈로그어곡,
역시나 스포티파이 랜덤 재생으로 찾은 보물.
최근 앨범이 무지 좋더군... we shud know that the world music is around us.
굳이 영어 해석본을 찾아보지 않아도... 점점...
적당한 예산으로 다음과 같은 차를 고려했으나...
엄청나게 럭키했던 딜로서 나는 다른 차를 구매하게 되었다ㅎㅎ여전히 만족스럽다
현대미술이 처음일리는 없었다. 올해 삼청동과 맨해튼, 브루클린과 상하이에서 눈에 담았던 ‘것’들이 떠오른다. 주기적으로 현대미술을 마주하게 하면서 받는 순간의 신비한 느낌을 좋아한다.
깔끔한 흰 배경에 검은 글씨, 현대미술이라는 단어와 함께 책의 표지는 내가 사랑해마지 않는 공간, 국립현대미술관의 간판을 떠오르게 한다. 순수한 호기심과 지적 허세를 위한 욕망 그 사이 어딘가에서, 늘 미뤄왔던 현대미술의 이해를 멤버들과의 토론을 통해 이끌어내고 싶어 고른 책.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큐레이터 저자의 재치 있는 문장들이 내게 남긴 것은 무엇일까?
‘현대미술은 죄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생아일 뿐, 그저 뱉아내고선 어렵고 낯선 말들로 철학이나 메시지를 담은 척 하면 돼’라는 오해는 아직 풀리지 않았다. 책에서도 유명 큐레이터나, 미술관의 기획전, 경매의 자본주의적(투기적) 특성이 부여하는 작품의 가치를 인정한다.
제프 쿤스니 데미언 허스트니 하는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과 더불어 아랍 여성 예술가의 비디오 등을 찾아보며 책을 읽었는데, 내게는 느낌표보다는 물음표의 연장이었다. 처음 봤을 때 끌리지 않는 작품들은 나 개인과 안맞는 것일 수도 있다라는 것이 완전한 위로가 되지 않는다.
나는 앞으로도 현대미술관을 찾고 이를 이해하고 존중하려는 노력은 할 것이다. 이번 책을 읽고 얘기를 나누는 것이 튼튼한 초석이 될지도 모르지만… 가는 길에 이정표가 어디로 향하는지는 매우 모호하다.
아무쪼록, 다음 주 중으로 댄 플라빈의 형광등 아트워크를 집에 설치할 예정이다.
(https://www.davidzwirner.com/exhibitions/daylight-or-cool-white)
#1. 이우주씨
내 이름은 현우가 아니라 우주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우주가 될 뻔 했다(고 전해진다). 그랬다면 외국인 친구들에게 난 Henny가 아닌 Space가 됐을까. “요즘은 개명 신청이 쉽다던데”라며 “요즘은 봄, 가을이 없네요” 정도의 지식을 전달해주는 이들에게 매번 기시감을 느낀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하는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가 떠올랐다. 이 책의 메인 토픽이 우주, 별 같은 거였는데 하며 다시 우주를 떠올리니 길고 긴 어둠과 그 공간을 유영하는 우주먼지, 쓰레기가 떠오른다. 반세기 전 한반도 시인이 남긴 글과 먼 우주는 내 머리 속에서 가까이 있구나 하니 인간 사고 능력에 감탄하게 된다.
왜 나는 특별함과 개성을 구가하기 위해 우주라는 이름에 미련을 갖는걸까. 래퍼나 DJ가 활동명을 정할 때, 또는 일종의 포스트모더니즘 표현 활동이라 생각하는 인디밴드 이름 짓기처럼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는 욕망. 아무래도 난 이우주가 되고 싶다라는 생각을 당분간은 챙겨갈 듯 하다.
#2. 별과 달을 좇던 18세
하이디가 뛰어노는 (사운드 오브 뮤직스러운)목가적인 풍경에서 밤하늘을 상상하는 것은 쉽다. 이따금씩 캠핑장에서의 밤에 봤던, 혹은 ‘밤하늘.jpg’의 이미지를 투영시키면 간단하기 때문에. 열여덟의 나는 매일 우주를 바라보며 살았는데, 사실은 지금도 수 만명이 그러고 있다. 다만 그것을 바라보는 곳이 하이디의 목장이 아니라 분당의 학원가라는 것은 한국판 블랙코미디.
지구과학1이라는 꿀과목(?)에는 함정이 있는데 바로 달과 별의 움직임과 그 변형이다. 어느정도 이론을 익히고 나서는 IQ 테스트 같은 점이 있었다. 실제로 달의 다양한 모습을 본 적도 없이 난 좋은 성적을 받았고 그걸로 인연은 끝났다.
세액공제가 어떻고, 이 보험에 특약이 어떻고, 야근비 규정을 따지는 지금의 내가 잠시 시간을 내어 밤하늘을 바라보는 것은 어색하게 느껴진다. 지방 보건신문에 흔히 쓰이는 기사 “낮에는 의대교수, 밤에는 색소포니스트”보다 비논리적인 인상이다. 문제집에서 밤하늘을 보던 나와 이런 현실적인 고민을 늘 안고 밤하늘을 볼 나는 얼마나 멀어지고 달라진걸까. 그말인즉슨, 우주와 별을 생각하는 것은 “비현실적”인걸까? 끝없이 물고 늘어지는 생각을 하게 된다.